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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부모자녀

(심리상담/ 부모자녀교육) 성폭력,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by art therapist (아트) 2020. 9. 30.

 

 

 

 

 

 

 

 

 

 

 

 

 

 

오늘은 좀 무거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두 딸을 키우면서 가장 두려운 상황이 성폭력입니다. 저도 어릴 때 그런 위험에 노출이 된 적이 있고, 또 한국이나 미국,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여자라면 자유롭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그런 종류의 사건 사고를 더 많이 듣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실 더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 고등학교에서도 몇 년 전 고등학교 학생들이  부모가 없는  집에서 자기들끼리 술파티를 열었습니다. 술에 취에 정신을 못 차리는 여학생의 옷을 벗겨 몸에 낙서를 한 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일에 가담한 학생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피해자 학생은 수치심과 인터넷 어딘가 떠돌고 있을 자신의 사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미국 고등학교는 졸업할때 쯤 되면 , 졸업 파티나 홈커밍 파티로 아이들이 흥분하고 때론 무절제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가 제가 준 가장 큰 이점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모든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었거든요. 딸아이가 집에만 있으니 이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니 그거 하나는 좋습니다.)

 

이런 종류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추행, 강간, 성폭력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가 들 때까지도 여자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폭력의 심각한점은 단순히 육체의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 상황을 거부하고 피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제삼자의 삐딱한 시선까지도 비수로 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성폭행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이 있습니다. 성폭행과 성추행은 낯선 이에게 당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대부분 90% 이상이 알고 있는 친척, 동네 오빠, 아저씨, 선생님 , 학원 선생님, 친구의 오빠, 남동생, 직장상사, 동료 등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원하지 않은 그 어떤 성관계, 성행위는 모두 성폭력, 강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부부관계이거나, 애인관계인 경우 사실 이런 성폭력은 처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부의 문제이고, 연인 간의 문제라고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주장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 법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성폭력이 많아서 참 애매합니다. 미국은 합법적으로 14세 이상의  미성년자끼리 합의한 성관계에 어떠한 형사처벌도 불가합니다. 물론 가해자가  성인인 경우는 법적 처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해자가 미성년자들 사이나  연인관계에서 합의하에 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강압적인 성관계였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는 이상 처벌은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피해자 학생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와 교제는 하나, 아직 성관계까지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억지로 강간을 당한 경우 같은 것입니다. 

 

 

 

 

 

 

 

 

 

 

 

이런 염려때문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저는 성폭행 예방교육을 강하게 했습니다.  낯선 이에 대한 접근을 조심하고 원하지 않는 어떤 접촉도 거절하고 거부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고등학교를 올라가자마자 페퍼 스프레이 (눈에 뿌리면 눈이 매워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스프레이입니다.)를 사줬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고 하면서요. 사실 아무리 이렇게 조심해도 우리 삶에서 어떤 사건들은 우리의 능력 밖인 것이 많습니다. 맑은 날 갑자기 소나기가  오듯이, 그리고 내가 아무리 안전운전을 해도 어떤 사고는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릴 때 만난 것처럼요.

 

 30년도 훨씬 넘은 일이지만 전 그때의 그 상황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다행히 저는 마지막에 끔찍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운이 있었습니다. 제 나이 고작 8-9살 되었을 때 친구 집에  놀려가는 길이였습니다. 저희 집 골목 주택가를 지나 시장 골목을 건너가면 친구가 사는 아파트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를 아는 듯이 저의 어깨를 갑자기 감싸고 제 목에 도루코칼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장 골목엔 엄마가 자주 가던 단골집을 지나고 있었지만 도와달라 입도 벙끗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제가 가던 길, 반대로 돌려 집 근처에 나무가 무성한 공터로 저를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 아저씨가 다시 저희 집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 전 하나님의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곤 꼼짝 말라곤 하고 바지를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그 아저씨가 뭐하려고 바지를 벗는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거든요.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는 느꼈습니다. (나중에 다 크고 나서 그 아저씨가 저에게 하려고 한 것이 아동강간이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분노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아저씨가 집 쪽으로 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면,  또 소심하고 겁 많은 제가 그때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 몹쓸 짓을 당했다면 제 성격에 아마 그냥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벨트를 벗고 바지춤을 벗으려고 하는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집 쪽으로 달렸습니다. 그 공터는 저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거든요. 정말 숨도 안 쉬고 뛰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엉엉 울면서 “ 엄마 ~ 엄마 어떤 아저씨가요~ 흑흑….” 그때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못 했던 저에게 집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일을 하시던 엄마는 “ 그러니까 밖에 나가서 놀지 말라고 했지!”라고 호통을 치시고 하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아마 동네에서 놀다 일어난 별일 아닌 일이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억엔 이 사건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그 날 일을 한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별일 아닌 일이 되어 버렸거든요. 

 

 

 

 

 

 

 

 

 

 

 

 

그리고 마치 그날의 사건은 제가 잘못해서 일어난 것처럼 스스로 이해되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밖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친구를 만나러 가지만 않았어도... 그런 아저씨는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더불어 이 사건은 제 삶에 여러 가지를 바꿨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께는 힘든 일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세상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남자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저의 10대와 20대 때 너무 지배적이어서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렸습니다. 그 일은 제 잘못이 아니라, 그날 나쁜 아저씨의 희생자가 될 뻔한 재수 없는 사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쉬웠던 점은 그때 저희 엄마가 “무슨 일이야?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어딨어 ?그 나쁜 새끼! 그래도 아무 일 없어서 너무 다행이네, 어떻게 거기서 도망쳤어, 장하다 우리 딸… 너무 다행이다.”라고  안아주셨다면 제 마음이 훨씬 가볍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경험 때문에  더더욱 성폭력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엄마가 되고 딸들이 커가면서 말이죠. 제가 엄마로서 딸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뭐든지 하겠지만,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딸을  위한 것일까?' 하는 것까지 말입니다.  성폭력은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후 처리와 치료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재수 없는 일이 되느냐 아니면 내가 조심하지 못하고, 처신을 잘못해서 생긴 일이냐 라는 이 생각 차이는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저는  무조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고 말해 줄 것입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절대로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야~ 재수 없는 사고와 같은 거야. 네가 밤늦게 돌아다녀서도 아니고 짧은 치마를 입어서도 아니야. 이건 피할수 없었던 사고 같은 거야. 절대로 네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거 아냐. 그리고 이렇게 네가 살아 있잖아 그거면 됐어. 엄마는 네가 살아있는 것 만으로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너는 그냥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그날 자신의 시간을 반추하며 후회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이 한 그날의 모든 선택들을 후회하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거든요. 그날 내가 밤늦게 돌아다니지만 않았더도, 그날 친구를 만나지 않았어도,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등등. 그러나 사실 본질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동의하지 않은 성접촉 내지 관계는 가해자의 문제이지 피해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가해자를 찾을 수 있다면 끝까지 찾아 범죄의 댓가를  물을 것입니다.

많은 성폭행 피해자의  또 다른 아픔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거나 사건 자체를 쉬쉬해버리는 것입니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여주인공은 어릴 때 잘 나가는 친척오빠에게 당한 성폭행 자체보다 그 일을 가족 모두 덮어버리려 하고 묵인하려는 그 태도 때문에 더 괴로워합니다. 자신에게 엄청난 무력감과 수치심을 주었지만, 가족들이 별일 아니라 치부해버렸기 때문이지요. 이런 주변의 태도가 피해자를 두 번 죽이게 되는 꼴입니다. 피해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도움으로 그 아이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료할 것입니다.

아마 오래 걸릴 것 입다. 그래도 딸에게 이 세상이 네가 생각한 것만큼 나쁜 일만 일어나는 세상은 아니란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런 성폭력은 세상에 대한  불신, 특히 남자에 대한 이유 없는 반감과 의심을 키우기 때문에, 차후에 인간관계 더 나아가 연애/결혼생활에 치명적인 구멍을 만듭니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자신의 무력감과 수치심, 그리고 분노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해, 섭식장애, 우울증, 불안, 공황장애 등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나쁜 친구들 어울리거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 밤늦은 외출 등은 당연히 못하도록 일러야 합니다. 그러나 성폭력이 무서워 우리 아이를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특히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가 할수 있는 통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의 염려이고 걱정이라도 이런 통제와 제약을 달가워할 딸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불행은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그 어떤 치료를 한다 해도 성폭행, 강간, 추행의 경험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시간이 멈춰버리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가장 무서운 점은 세상은 계속 흘러가는데 자신은 멈춰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일 때문에 그 아이의 인생 전부를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걱정은 일종의 직업 병적인 강박일 수도 있고 성급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나쁜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리고 생각보다 성폭력은 우리 가까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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