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집안도 학벌도 외모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루저(loser)라고 부르더군요. 그런 의미에선 저희 남편이나 저나 다 루저입니다. 저희 남편은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에 말썽꾸러기로 유명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모이면 다들 저희 남편의 화려한 과거를 듣느라 혼이 빠집니다. 그래서 아들이 남편을 닮지 않고 소심하고 겁 많은 절 닮은걸 가끔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쥐꼬리를 잡고 사촌동생과 누나를 괴롭히고 고물줄 끊어 먹고 날이 저물도록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만 한 남편을 닮은 아들을 감당할 자신은 없거든요. 얼마나 장난이 심하고 짓궂었으면 “ 00 오빠는 죽어버렸을며 좋겠어!” 라고 사촌 여동생이 말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겠죠.
그와는 정반대로 저는 어릴때부터 불안이 많고 가정불화가 많은 집안에,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제 스스로 그냥 바보 겨우 면한 정도로 태어났다고 생각할 만큼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고요. 저는 제 안에 아무 재능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소심하고 착한 아이로 컸지요. 정말 학교나 집에서나 스스로 먼지 같은 존재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저희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와서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저는 집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원했기 때문에 결혼식을 최대한으로 간단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혼수와 예단 예물도 모두 생략하고 예식만 했습니다. 웨딩업체도 없이 혼자 손으로 발로 뛰어가며 검소한 결혼식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저는 결혼하고 각자의 학업을 마치기로 했지만, 갑자기 큰애가 생기는 바람에 남편은 다니던 대학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생계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 지잡대” 출신에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해 버벅거렸으니 미국에선 정말 바보나 다름이 없었지요. 방 한칸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한 저희의 출발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거기다 제가 사는 동네는 실리콘 밸리 지역이라 내로라 하는 유명한 IT 회사들이 많이 있고, 스탠퍼드와 UC버클리대학이 근처에 있어서, 정말 한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 동네입니다. 한인들이 많은 큰 교회를 가면 여자분들은 이화여대가 밟힌다고 할 정도였고, 남자분들은 거의 SKY 대학과 카이스트가 많았습니다. 농담으로 그 교회는 박사들만 다니는 교회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지요. 학벌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들도 많고 사업을 이끄는 사람들도 많아 정말 입이 떡 벌 어질 정도로 잘 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곳에 있다 보면 없던 열등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주눅이 들었습니다. 정말 루저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만 쳐다보고 살았다면 저희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열등감에 사로잡혔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남편대로 성실히 가정과 생계를 이끄느라 노력했고, 저도 저 나름대로 15년 넘도록 죽어라 공부와 육아에만 전념했습니다. 둘이서 아이들 키우며 사는 것이 바빠 주변을 많이 돌아 보지 못한 것이 어쩌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보니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습니다. 물론 잘나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여전히 저희는 사실 자랑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러나 저희의 처음 시작과 비교하면 참 많이 컸습니다.
남편은 스스로 배운 기술로 교정치과에 쓰는 치아교정기를 만드는 작은 사무실을 열어 나름 ‘사장님’이 되었구요. 영어도 잘 못하던 저는 대학원 2개를 졸업하고 미국 학교에서 학교 상담사가 되었습니다. 남들처럼 떵떵거리며 살 정도는 아니지만, 5 식구 남에게 손 안 벌리고 독립적으로 사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부부는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 탈 없이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연애하고 결혼초 보다 더 많이 아껴주고 사랑하고 있으니 성공한 셈입니다.
공부도 안하고 장난만 쳐서 걱정이던 남편은 이제 시댁 가족을 통틀어 가장 “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정”을 이끌고 있는 유일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중에서 가장 존재감 없던 저는 “ 미국 가서 뭐든 알아서 잘하는 대단한 딸” 이 되었고요. 저 또한 제가 10대 20대 생각한 삶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과 성공이란 것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두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자라나는 우리자녀, 청소년, 청년을 바라볼 때 “ 싹수가 노랗다.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이 언젠가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지켜봐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은 “얘가 이래 가지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과 한심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특히 배우는 것도 적응하는 것도 느린 둘째가 요즘 들어 온라인 수업을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힘들어해, 저도 많이 속상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항상 저희 남편이 그럽니다. “ 나는 더했다. 그래도 괜찮다. 나쁜 짓만 안 하면 괜찮다. 날 봐라. 다 크면 알아서 산다. 세상에 공부보다 중요한 거 훨씬 많다” 이렇게 저를 달래줍니다. 그러면 누가 뭐라 해도 그 말이 참 위로가 됩니다. 좋은 학벌 좋은 머리 타고난 사람이 저에게 그랬다면 더 짜증 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찐" 말썽꾸러기였던 남편이 하는 말이라 위로가 됩니다. “ 그래 남편도 잘 살았는데 뭐~ 정말 공부랑 담쌓고 산 사람도 잘 사는데 뭐 ~”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불안때문에 아이들을 더 다그치고 몰아세울 것입니다. 아마 요즘 같은 세상은 더 할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나의 자녀는 우리보다 훨씬 더 안정된 미래를 갖게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젊을 때 시간을 아끼고 실력을 쌓기를 원하는 부모들의 좋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럴 때가 정말 많습니다. 아이들이 힘든 일, 어려운 일, 넘어지는 일 없이 순탄하게 살기를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그냥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삶에서 '안정" 만큼이나 불확실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인생의 중반을 지나가고 있지만 저의 미래도 사실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느낄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바라보며 "안정적인 삶"이라는 욕심이 생길 때 저는 과거를 돌아봅니다.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이지 못하고 불안했던 우리의 과거를 봅니다. 넘어지고 비틀거렸어도, 어른이 되어 나름 방향을 찾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리가 다시 내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때론 넘어지고 때론 방황도 하겠지만 우리가 그랬듯이 그들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겠지요.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것이 또 부모의 역할이니까요. 다른 이들보다 시간이 좀더 걸릴수도 있지만, 루저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루저도 언제가 꼭 빛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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