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발달되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나 생일이나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등 특별한 날에 주는 카드가 곳곳에 많이 팝니다. 그러다보니 Hallmark 같이 카드를 전문적으로 파는데도 많고,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도 많이 팔지요. 특별한 멘트와 예쁜 디자인이 많아 저도 구경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였는지 저희도 가족끼리 카드를 많이 주고받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저희 집의 특별한 가족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생일이나 기념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서로에게 카드를 써주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우겨서 시작한 문화입니다. 감수성이 너무 아날로그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평소엔 해주지 못하는 " 오글거리는 멘트" 를 카드에 담아주고 싶었습니다.
처음 남편에게 특별한 날 카드 써달라고 했을 땐 반발도 많았습니다. 남편은 글씨도 악필인데다가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할 말을 거의 다하고 살기 때문에 ^^ 그래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한 것을 계속 고집 피워 18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이 먼저 "내 카드는 썼냐?" 라고 제게 먼저 물어봅니다. 감사와 사랑의 표현은 자주 들어도 더 듣고 싶은 말이라서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카드에 더 집착하게 된 이유는 쓸 땐 진지했는데 몇 년 후에 같이 읽어보면 너무 유치하고 웃겼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이 된달까요? 그중 하나가 몇 년 전 제 생일에 쓴 남편의 카드 때문입니다.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 남편이 준 카드를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남편의 카드는 내용의 진지함과 진중함에 상관없이 그의 악필이 모든 카드를 유치하고 웃기게 만들어 줍니다.^^그런데 지금으로 부터 8년 전에 쓴 제 생일카드에 뭐라 뭐라 고맙고 사랑한다 하고 마지막 한 문장에 빵 터졌습니다. "하늘이 지금 무너져 내린다 해도 나는 당신을 위해 하늘을 받들겠습니다.”라는 정말 손발 오그라드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깔깔거리고 웃다가 그래서 그날 밤 집에 온 남편에게..
“ 자기야 8년 전에 자기가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위해 하늘을 받들어 준다고 생일카드에 써놨던데?”
“ 내가!? 진짜? 거짓말~ 미친 거 아냐? ㅎㅎㅎ”
그래서 ‘증거물’을 들이밀었죠.
“ 봐봐 당신이 이렇게 썼잖아? 뭐야? 진심이 아니었던 거야?ㅎㅎ”
“진짜 그러네 ㅎㅎㅎ 와 ~진짜~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해도 하늘은 못 들지~ㅎㅎ”
그렇게 저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일 이후 저는 남편에게 앞으로도 계속 “ 재미와 감동”을 더한 카드를 쓰라고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제 생일 카드를 보고 제가 “ 뭐야~ 별로 안 웃기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 있어 봐 봐. 내 카드는 한 3년 뒤에 웃길 거야~”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또 3년 뒤에 보려고 고이 모셔 놨습니다.
카드의 좋은 점은 카드를 적는 순간만이라도 나를 생각하면서 내어준 시간이지 않을까 싶네요. 비록 그 진심이 하루도 못 간다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그 ‘순간적인 진심’을 모아놓고 들여다볼 수 있는 추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추억과 기억들이 때론 메마르고 지루하고 힘든 우리네 인생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드가 아니더라도 오늘부터 우리 집의 가족문화로 만들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한번 생각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어떤 가정은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가족사진을 찍기도 하고 매년 캠핑을 가기도 하더라구요. 무엇을 하느냐보다 같이 가족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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