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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소소한일상/위로) 전하지 못한 진심이 없길.

by art therapist (아트) 2020. 9. 10.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침부터 눈이 팅팅 부었다. 어젯밤 10시도 안돼서 잠이 든 나는 12시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거의 10년만에 나에게 오빠가  쓴 이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오빠는 나의 글 "상처 받은 어린아이 엄마가 되고 치료사가 되다"를 보고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글 중간에 오빠에 관한 글이 있었고, 나는 이 무심하고 무관심한 동생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변명과 사과를 했었다. 나는 나만 피해자라 생각하고 자란 어린시절을 회상해보니 그도 참 힘들었을거라.. 그 마음 모른 채 하고 산 세월이 참 미안했다. 나는 지금까지 말하지 못한 내 진심을 오빠에게 전해달라 엄마에게 부탁했다. 

 

그런 나의 글을 보고 오빠가 답장을 보냈다. 자신이 몇 년 전에 쓴 에세이와 함께...자신은 사과의 글이라 했지만, 사실 나는 오빠랑 화해하거나 할 것도 없는 사이다. 어릴땐 다른 형제만큼 별일 아닌 것으로 싸우고 투닥거린 게 다이고, 사실 오빠는 다른 오빠들과 달리 세심하고 다정한 오빠였다. 내 힘든 어린시절에 그래도 나는 그가 나의 가림막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엄마에게 남편이자 아들이었던 오빠가, 부모가 반대하는 연애, 결혼을 하며

나는 오빠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미국에 왔고 나 살기 바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소원해졌다.

 

그게 우리가 어색해지고 멀어진 이유라면 이유다.나는 오빠 자체가 미웠던 적은 별로 없다. 그는 단독으로 놓고 보면 참 섬세하고 예민한 정형적인 예술가 타입이다. 누군가를 대차게 미워하거나 괴롭히거나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론 우리 외할아버지의 예술가적 피가 우리 오빠에게 몰빵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 운도 없는 사람이다. 그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키워준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면 지금은 정말 시나리오 작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참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나는 그냥 내 차별의 대상이 그이고, 내 비교의 대상이 그여서 미웠던 것뿐이지 오빠 자체가   싫거나 미운적은 별로 없다. 그런 그가 나에게 사과라며 보낸 이메일과 그의 짧은 에세이를 보고 어젯밤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화장실에서 몰래..(난 이제와 "음.. 글 쓰는 것도 재밌네.. 글도 써볼까 "하는 수준이지만 역시 그는 태생이 작가였다.)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정착하고 난 후부터, 나는 오빠에게 알 수 없는 마음의 빚이 있었다. 나는 어쨌든 속 시끄러운 집안에서 도망 나왔으니까..그러나 오빠도 나에게 마음에 빚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관련된 에세이를 써 놓은 게 있다며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 글에서 나는 그 당시 내 맘 같은 건 전혀 모를 거라 생각했던 오빠의 다른 마음을 보았다. 그 이후 나에게 보여준 여러 행동들은 나를 지키고 나를 보듬어 주려 했던 그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어제 참 많이 울었다. 

 

오빠의 글 중에서-

"오락실과 만화방에 환장했던 당시, 처음으로 내 돈을 들여 영화 잡지를 사게 된 것은 장국영 때문이었다. 홍콩 영화에 빠져 있던 동생이 밥보다 잠보다 더 좋아하는 게 그였다. 문제집을 사러 들어갔던 서점에서 그를 표지모델로 한 잡지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 잡지가 로드쇼인지 스크린인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뇌쇄적인 미소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 미소가 담긴 잡지를 건넸을 때 동생이 지을 웃음과 오락 수십 판, 만화책 수십 권을 저울의 양끝에 올려놓고 한참을 고민했던 것도.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총탄 속으로 뛰어들고 불의에 맞서기 위해 피를 흘리던 사나이들에게 빠져 있던 동생은 그들에게 보이는 애정의 극히 일부라도 나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가족 내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는 동생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했고, 또 그만큼 나를 편애했다. 어린 시절의 동생은 할머니에게 머리를 쥐어 박혀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아이라는 폭언을 들어도 잠시 시무룩하다 이내 다시 웃곤 했다. 그러던 동생이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점점 웃음을 잃기 시작했다. 차별.. 어떤 날보다 벼려진 그 칼에 찔린 그녀의 눈에 난 어떻게 보였을까. 남매간의 의리도 없고, 불의의 혜택을 즐기기만 하는 악당, 아니라면 악당의 지질한 수하였음이 틀림없다. 동생은 차가운 가족 안에서보다 홍콩 누아르 속 끈끈함과 뜨거움에서 밭은 숨 같은 위안을 얻었으리라."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도 참 미안했었구나..그 마음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아니 한쪽 구석에 경직되어 있던 내 마음이 많이 녹아내렸다. 나를 지켜주고 싶었으나 그도 고작 나보다 1년 6개월밖에 먼저 태어나지 않은 아이였을뿐이다. 나는 오빠를 한 번도 가해자라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오빠는 가해자 편에 서 있던 사람이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은 짐이었을까 복이었을까?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사과를 나는 받고 참 많이 울었다. 아니 지금도 눈물이 난다. 우린 어쩌다 서로에게 이런 사과를 해야 하는 사이가 되었나.. 우리가 원해서 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데..그러나 그의 진심에 나는 또 이렇게 내 마음을 한 땀 꿰매는 것 같다. 역시 치유의 시작은 마음을 나누고 진심을 전달하는 것임을 또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지 못한 진심을 꼭 전달해 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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