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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소소한 일상/ 부부생활) 나한테 수고하란말 하지마!!

by art therapist (아트) 2020. 10. 24.

 

 

 

 

 

“수고해~ 오늘은 수고해라고 해도 되지ㅎㅎ?”  요즘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물어봅니다. 

 

한동안 남편은 저에게 수고해란 소리를 잘 못했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심하게  “버럭” 한 적이 있었거든요. 막내를 낳고 시어머님께서 한 달 산후조리를 해주시고 LA로 돌아가신 후에 스트레스가 극에 도달한 적이 있었습니다.  막내는 이제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한창 밤중 수유를 하는 중이라 저는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아직 손이 많이 필요한  3살반된 아들과 그때 막 중학교를 들어가서 한창 반항하던 큰 딸을 돌보는 시기였습니다. 거기다 저는 미술대학원 마지막 졸업학기라 이것저것 할 것이 많이 있었지요.

 

 친정도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정말 홀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남편은 나름대로 저를 많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 어쨌든 밤중에 그가 모유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매끼 아이들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녔습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배달음식이 발달되지 않아, 다섯식구 밥을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였습니다.)  낮엔 그도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낮동안 갓난쟁이 돌보며, 아이들 밥 챙기고  아이들 학교에서 데리고 오고 하는 모든 것은 오롯이 제 몫이었지요.

 

그러니 남편이 그런 제가 안쓰러워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저를 토닥이며 “ 오늘도 수고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 있어서, 그 수고하란 말이 정말 싫었습니다. 원래 수고하란 말을 열심히 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출근하는 남편에서 버럭 하며 "나한테 수고하란 말 하지 마!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수고해! 뭘 더 얼마나 하란 말이야!”라고 울면서 난리 친적 있습니다. 

 

아내가 안쓰러워 그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한 소리였는데 제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그 아침에 남편은 정말 황당해 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그는  저에게 “수고해” 란 소리를 못했던 것 같아요. ^^ 그런 남편이 요즘 저를 보면서 아침에 다시 “수고해~"라고 합니다.  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수업 돌봐주고 밥 챙기고 하는 게 쉽지 않아서 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수고해라고 해도 괜찮은 거지?”라고 확인하면서요. 

 

그때 당시 저는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요? 수고해란 말도, 미안하단 말도, 사랑한다 말도 다 듣기 싫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당시 저에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땐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몇 시간 혼자 쭉 단잠을 잘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 했었으니까요.  마치 배고픈 사람에겐 “힘내라” “좋아질 것이다” “ 좀만 더 참아라”는 말보다는 먹을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요.

 말이라는 것은 정말 힘이 있고 위로가 된다고 믿지만, 때론 이런 상황에서 사실 아무 힘이 없기도 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때론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위로보다 중요한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상황을 돌아보면 사실 남편은 아무 잘못한 것이 없지요. 제가 너무 지치고 힘들었기 때문이지 남편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우린 상대에게 화를 낼 때가 많아요. 너무 힘들다는 표현이었겠죠. 지금의 저라면 괜히 죄 없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시간은 누구의 잘잘못이기 전에, 어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니까요.  

 

이렇게 인생은 서로 실수하고 그러면서 배우고 성숙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세월도 있고요. 그때 서로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지혜롭게 버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세월이 지나가면 이런 실수도 힘들었던 일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네요. 이제야 남편의 " 수고해" 라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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