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처음으로 둘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용하고 혼자 너무 진지한 아이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별로 없거든요. 손 귀한 집안에 5대손으로 태어났지만, 집에선 가장 어리바리하고 맘 여린 아들입니다. 전에 잠깐 언급했듯이 불안이 높아서 겁도 많고 뭐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녀석입니다.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말은 못 하고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릴 땐, 어릴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랑 비슷해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따지기 좋아하는 두 딸들에 비하면 다루기 쉬운 아들이기도 합니다. ^^
어쨌든 타고난 재능은 두 딸들에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또 저희 시아버님께는 귀하디 귀한 손자입니다. 저와 남편이 아들을 좀 답답해할 때면 그래도 아버님은 늘 괜찮다 잘한다 이뻐해 주시거든요. 그래서 저희 아들도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버님도 평소에 다른 이들에겐 무뚝뚝한 편이시지만 둘째와 애교쟁이 막내에겐 한없이 인자하신 할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할아버지는 우리 둘째와 막내를 제일 이뻐하시는 게 보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애들이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가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라고 물어보더랍니다. 사실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땐 “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이지 않을까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당연히 “ 00이랑 00가 세상에서 제일 좋지~”라고 답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심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 둘째가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아들인 아빠가 제일 좋아야지 어떻게 우리가 더 좋아요?”라고 되묻더랍니다.
저희 아버님도 황당해서 “ 할아버지 되면 손자 손녀가 더 이쁘다”라고 했는데도, 맘이 상한 아들은 아빠에게 가서 울먹이면서 말했답니다. “ 할아버지는 아들인 아빠가 더 좋아야지 왜 우리가 더 좋아? 아들이 더 좋아야지!”라고 하면서요. 남편은 나름대로 과일의 예를 들어가며 ( 너는 수박을 제일 좋아하지만 다른 과일도 좋아하지 않느냐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등등) 너희들을 제일 좋아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한다고 설명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빠를 제일 좋아해야 하지 않냐면서요.
히다하다 지친 남편이 “ 괜찮아~ 00아! 아빠도 할아버지 별로 안 좋아해~ㅎㅎ”라고 그냥 결론을 내렸답니다. ^^
자기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이뻐 보이는 그 마음을, 만 10살이 된 아들이 알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자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면 마냥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아들의 마음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자신이 나이가 들면 아빠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까 봐 그게 두려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아빠가 안돼 보여 그랬던 것일까요? 상담사도 알길 없는 아들의 마음입니다. ^^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들은 아빠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2등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것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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