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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미국생활/ 소소한 일상)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딸

by art therapist (아트) 2020. 12. 4.

 

 

 

 

 

한국은 어제가 수능이였던 걸로 압니다. 고등학생 땐 수능 점수에 따라 내 인생이 결정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지나고 보니 수능 시험은 인생에서 작은 도전과 시험중에 하나였을 뿐이였는데 말이죠.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큰 딸이 대학시험을 볼 나이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수능처럼 한날한시 딱 한 번만 보지는 않지만 SAT라는 대학 입학시험이 있습니다. 3번의 기회가 있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점수로 원서를 넣을 수 있습니다. 

 

원래 올해  SAT시험을 봐야 하는 딸은   지난주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요. 다른 친구들을 모두 지금 SAT 준비니 대학교 입학 에세이를 쓰느라 한창 바쁠 시기인데 말이죠.

 

큰 딸은 4년제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 근처 Community college, 전문대학을 다니며 자신이 뭘 진짜 하고 싶은지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몰라도 저는 솔직히  처음에 실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2세대 아이들 중에  4년제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통계를 내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부모들의 학구열은 장소와 나라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어릴때 부터 똑 부러지게 말도 잘하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림이면 그림 어느 것 하나 다른 아이들에 뒤지지 않고 잘하던 아이라 나름 기대가 컸나 봅니다. 그런 아이라  4년제 대학을 가지 않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꼭 좋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분야라면 뭐든지 서포트해주고 싶었는데 큰 아이는 크면 클수록 좀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공부는 점점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체능 분야도 이것저것 시켰보았지만 그것도 금세 힘들어하고 지겨워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보기엔 끈기가 없었습니다.  악기나 그림 모두 재미로 시작해도 지겹고 지루한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억지로 라도 꾸준히 해서  참고 견뎌야 실력이 됩니다. 그러나 큰애는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나 무엇하나 깊게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으면 집중을 못하고 집중을 못하니 성과가 나올 리가 없었습니다. 학교 수업도 학과 과목과 상관없이 선생님이 재미있으면 성적이 잘 나오고 재미가 없으면 성적이 곤두박질쳤으니까요. 

 

저는 그런 아이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제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동기부여를 해보고 토론하고 달래고 어르기도 하고 상을 내걸기도 했지만 다 그때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싸우기도 하고 서로 관계만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알았지요. 저도 모르게 아이를 제 자랑으로 삼고 싶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공부는 그녀의 길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늘 말로는 25살 때까지 실컷 방황도 하고, 해보고 싶은 거 다 도전해 보라고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다른 부모들처럼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번듯한 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 마음 알고 나니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늘 다른 부모에겐 기다려주고 인내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하면서 제 스스로 그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저는 어릴 때 누려보지 못한 지원과 지지를 그녀에게  아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뭐든 대충 하다 말아버리는 큰아이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너는 뭐가 부족해서  이러는 거야!” 하면서요. 저는 부모가 반대하는 것도 끝까지 우겨가며 끌고 가는 고집 센 아이였거든요. 그런 저였기에 하루에도 마음이 12번 바뀌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딸은  저와는 완전히 다른 기질의 사람인데 저는 여전히 그녀의 기질을 인정하지 못했지요.

 

머리로는 대학을 가는 것보다 세상에 중요한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내 자식만큼은  남들  다가는  번듯해 보이는 길을 가길 바랬던 것입니다.  순전히 제 욕심이 였습니다. 그런 제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부모인 제가 간섭하고 관여할 일이 점점 사라질 거라는 것을 더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녀의 전공, 남자 친구, 직업, 직장 이 모든 것은 이제 그녀의 선택이 최우선이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대학문제처럼 제가 반대하는 길을 갈 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연습을 시작한 듯했습니다. 

 

 

 

 

 

이제 제가 할일은 그녀가 선택한 길을 잘 가도록 응원하는 일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제가 삶으로 뿌린 씨앗들이 잘 자라기를 소망했습니다.   비록 공부는 그녀의 적성이 아니었지만, 공부 빼고 뭐든지 잘하는 밝고 착한 딸이라 사실 큰 걱정은 없습니다. 훌륭해지거나 최고가 되지는 않더라도, 밝고 건강하게 살 것이라곤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 둥지에서  날아가려는 딸을 보고 있자니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 첫째를 통해서 또 배우고 성장하는 듯합니다.  

 

딸은 용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또 딸 덕분에 용감한 엄마 반열에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주류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건 용감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그녀의 선택과 삶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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