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꼼꼼한 남편이 정말 싫어하는 행동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의 물건을 쓰고 아무 데나 둔다던지 아니면 냉장고에서 재료가 상해가거나 음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하~~ 나도 개의치 않는 행동들입니다. 그래서 가끔 남편이 냉장고를 열어보거나 할 때면 심장이 콩닥거립니다. 늘 한쪽 구석에서 상해 가고 있는 아이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신혼 초엔 정말 일방적으로 많이 혼났습니다. " 너는 생각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살림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 돈이 막 남아나냐? " 하며 혼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남편도 저를 이해해 많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편이고, 저도 상해서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별로 꼼꼼하지 않은 저는 여전히 남편이 원하는 수준만큼은 안됩니다.
오늘 점심에도 크리스마스때 먹고 남은 야채 볶음이 이틀채 방치되어 있다가 남편의 눈에 발각되었습니다.
남편이 자기가 먹어치우겠다고 들고 가더니 " 아~ 상했어!' 그러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나름 이틀 동안 먹느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손도 안 되는 것이라, 다 먹지 못하고 상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바로 저는 " 아... 어제 다 먹었어야 했는데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화가 난 것이지요 ㅜㅜ. 말 많은 사람들이 말 안 하는 건, 100% 화가 났다는 것이거든요.)
큰애가 아빠 분위기를 살피더니 " 아빠 맛있는 수제비 빨리 주자! 그럼 기분 좋아질 거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곤 점심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집은 남편이 화나면 일단 먹을 것부터 줍니다. ^^ 그럼 보통 반이상은 금방 기분이 풀리거든요.
그러나 여전히 아무 말이 없이 밥만 먹는 남편에게 큰 딸이 " 아빠 아직도 화났어? 엄마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화 풀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 왈 " 아냐, 엄마한테 화난 거 아냐. 난 나한테 화난 거야. 내가 어제 야채 거기 있는 거 봤는데 그냥 내버려 둔 내 잘못이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 뭐야? 엄마 은근히 디스 하는 것 같은데. 널 믿은 내가 잘못이다. 뭐 그런 거잖아? 아빠~"
남편이 " 아냐 ~ 진짜로 그런 거 아냐! 엄마는 상해서 음식 버리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데, 아빠 혼자 불편하고 아까운 거잖아. 그럼 불편한 내가 미리 치웠어야 하는 거지. 엄마 잘못이 아니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 "우워 ~~~ 뿜! 뿜! 뿜! ~~ 아빠! 최고인데. 장난 아닌데! 진짜 중요한 걸 깨달았네 ㅎㅎ" 이러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남편이 이 경지(?)까지 이를 줄을 몰랐거든요. 예전 같으면 제가 혼나던지 싸우던지 삐지던지 할 문제였는데, 자기 성찰(?)로 마무리되다니요. ^^ 그렇게 저희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데는 오랜 시간을 걸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19년 걸리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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