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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인간관계

(나의 이야기/ 회피성 성격장애) 저는 병이 있었습니다.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2. 2.

 

 

 

 

 

저는 병이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특별히 아프거나 불편함이 없는 건강한 상태이지만 마음의 병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의 병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병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모나 가족이라도 말이죠. 그것이 내가 가진 치명적인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사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을 알아서 했고, 남에게 의지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으니까요. 덕분에 독립적이고 똑 부러지게 자기 할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오히려 듣고 살았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니 사기를 당할 일도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을 믿지 못하는 이 병은 마음을 나누는데 큰 어려움을 주었고, 더 나아가  누구든 저에게 기대려고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자기 할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거나, 가정에서나 공동체에 짐이 되고 골칫거리가 되는 사람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경우 모임 자체를 피하던지 스스로 거리를 두고 벽을 세우고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의 인간관계란 참으로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한 저였는데 결혼을 한 것이 기적이였습니다. 사실 결혼을 할 당시에도 남편에게 " 나 당신믿고 결혼하는 거 아냐! 나는 사람 안 믿어. 하지만 하나님 믿고 하는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으니까요. 눈에 보이는 사람도 믿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믿었다고 고백했던 제 신앙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웃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에 남편이랑 살면서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만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 2개월 만에 큰애가 생긴 이후 도망갈 여지가 사라지면서 이 병이 여러 가지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미국에서 친정과 떨어저 혼자 결혼생활과 육아를 하다 보니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고 나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교회에 가서 실컷 울고 기도하고 오는 것이 다였지요. 그렇게 큰 아이 키울 땐 혼자 아등바등하며 버텄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큰 아이가 커가고 제가 생각한 모습의 "완벽한" 육아가 되지 않자 멘붕이 왔었습니다. 엄마인 나에게 반항하고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의심이 커가고 그런 의심이 냉소로 변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제 안에 가지고 있던 의심병으로 가족과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그땐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심리학 대학원을 가면서 저의 성향이 회피성 성격장애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 성격장애의 사람들의 주요 심리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홀로 있기를 선택하는 성향입니다. 스스로 거절이나 비판, 문제 해결 혹은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그 상황을 피하거나 책임을 맡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본질적으로 보자면 불안과 두려움이 큰 사람들입이다.   정도가 심한 경우 도전이나 승진도 피하고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장애입니다.  본인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일만 하려고 하고 본인을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이 정신질환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이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질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질환은 자신의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기 때문에 중독이나 불안 우울증과 같은 다른 정신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2차적 문제까지 진행이 되어야 심각함을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제가 치료사가 되겠다고 한 것도 너무나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 

 

회피성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모든 상황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인간에겐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욕구보다 거부 거절 비판이나 갈등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더 심하기 때문에 홀로 있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저랑 케미가 맞지 않으면 벽을 치고 절대 마음을 주지 않고, 또 제가 아무리 좋아해도 떠나는 사람 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상되는 불편이나 불화 혹은 거절을 미리 차단하는 편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  성향은 저를 절대로 성장시키거나 성숙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성장과 성숙은 상대를 받아주고 이해하고 품어주려고 하는 아량에서만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회피성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나말고 다른이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늘 세상의 냉대나 비난 거절을 피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대면하는 것이였습니다.  처음엔 인정하기 싫었지만 스스로 제 틀을 깨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만의 세상에서 나와야 하는 용기가 필요했고,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세상엔 물론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경험해야 낫는 병이니까요.  아마 이 블로그도 옛날의 저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소통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너무 작지만 그래도 이 소통을 창구를 열어놓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의 제가 느낀 세상은  냉정하고 차갑고 무서운 곳이었다면, 지금의 제가 경험하는 세상은 너무 다양하고 도전적이고 따뜻한 곳이라 느끼니까요. 사람에게 상처 받은 병 또한 사람으로만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세상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느끼는 세상이 따뜻하고 믿을 만한 곳이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저처럼 자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볼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따뜻한 소통의 창문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정서적 경계 없이 아무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건강하지 않지만, 거절 과 비판이 두려워 온 사방의 문을 다 닫아 놓고 사는 것도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은 혼자서 살수 있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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