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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엄마와 딸/ 나의 이야기) 엄마와 싸우지 않는 이유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3. 25.

 

 

 

 

미국에 온 지 20년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미국에 오고 나선 친청엄마와 싸운 적이 없습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에도 엄마와 싸웠다라기 보다는 주로 저는 혼나는 쪽이었고 아니면 그냥 혼자 삐져있었던 것이 다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와는 얼굴을 붉히며 싸운 적이 자주 있고 지금도 사실 5분 이상 대화하면 언성이 높아지지만  엄마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특별히 아버지보다 저에게 다정하거나 따뜻한 분은 아니셨는데 말이죠.

 

어릴 적 제게 엄마는 불면 날아갈 것 같고 꽉 잡으면 깨질 것 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린 제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에 사랑 없는 결혼에 엄마가 정말 많이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까지 반항하고 따지고 들면, 엄마는 미련 없이 이 집구석을 떠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엄마의 짜증이나 냉소, 잔소리가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뚱하고 혼자 방에 틀여 박혀 울거나 밥 안 먹고 버티는 것이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미국에 오고나선 없어졌습니다. 엄마와 싸우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결정적 이유라면 멀리 떨어져서 이겠지요. 원래 부모 자식 사이에 싸우는 이유는 늘 사소한 이유와 오해인데 멀리 있으니 그런 일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 2-3년마다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이니, 서로 간에 만날 때만이라도 서로 잘해주고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엄마도 저도 서로 배려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저도 엄마와 가까이 살면서 육아니 살림등을 부탁했다면 분명 갈등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준 계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첫애를 낳을 때이고요. 아이를 낳고 나서 울면서 엄마에게 어떻게 둘째를 낳을 생각을 했냐며 울었네요..( 근데 전 셋을 낳았네요 ^^) 그리고 두 번째는  결혼 초기에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나서입니다. 아직도 그때 그 황망함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꿈에서 갑자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임종도 지키지 못한 제가 장례식에서 펑펑 운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울었던지 깨어보니 배게가 다 젖어 있더라고요. 그 꿈이 너무 리얼해서 정말 엄마가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제가 엄마로 아내로 살면서 엄마의 삶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엄마는 왜 저렇게 맨날 아프고, 잔소리가 많고 우리에게 짜증을 내나? 싶었지만 결혼생활이란 걸 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맞는 남편과  좋은 시부모님께 사랑받고 살아도  애 키우고 먹고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아들밖에 모르는 시어머니에 돈밖에 모르는 남편과 뼈 빠지게 일까지 하면서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오빠와 저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엄마 자리를 지킨 엄마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엄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시면서 스스로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늘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신 분이라, 저희가 다 결혼하고 난 후에 제가 검정고시공부를 해 보시라고 강권을 했습니다. 그때 나이 오십 대 후반이셨던 어머니는 주저주저하셨지만 검정고시공부를 시작하셨고 고등학교를 패스하고 전문대에 들어가시고, 4년제 대학도 나오시고 얼마 전 대학원까지 졸업하셨습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신 어머니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그전에 했던 말들이 다 맞았다는 것을 아시면서 저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시면 하실수록 어린 시절 우리에게 너무 잘못한 것이 많았다고 사과를 하셨습니다. 무지에서 나온 엄마의 행동들이 저와 오빠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며 늘 마음 아파하십니다.  공부를 하신 이후로 어릴 때 전혀 하지 않으시던 칭찬과 사랑 표현을 참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뭘 하든 응원해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별로 딸로서 살갑게 잘하지도 못하는 저를 그냥 다 이해해 주십니다. 저 또한 엄마의 그 진심 어린 사과와 사랑 덕분에 아버지와는 다르게 엄마에겐 짜증도 화도 잘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이 맞물려서 저는 엄마랑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이제 거의 20년이 다되어 갑니다. 철없던 저는 엄마가 되고 어른이 되었고,  어릴 땐 무섭기만 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엄마는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아마 저도 엄마도 세월의 흐름과 인생수업 덕분에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모녀 관계가 충분히 나빠질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더 나은 선택을 함으로 따뜻하고 든든한 모녀관계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에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엄마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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