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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부부일상/ 소소한 일상) 걸레가 될 때까지..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3. 12.

 

 

 

 

 

 

 

맥시멀 라이프 스타일의 삶을 사는 남편이지만 딱 한 군데 돈을 절대 쓰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옷을 사는 것입니다. 20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옷 가격이 20불 (한화로 한 2만 오천 원)이 넘으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식구끼리 나가서 밥 먹을 땐 100-200불은 기분좋게 지불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평소 디자인이나 스타일보다는 입었을 때의 촉감만 좋은 면 땡인 사람이라, 정말 손에 집히는 데로 그냥 입지요. 그러니 자신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제가 늘 " 그러고 나갈꺼야? 나는 그럼 같이 안 갈꺼야ㅎㅎ" 라고 한 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외출을 하거나 중요한 자리를 갈 땐 거의 항상 제가 옷을 골라줍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시작하고 지인의 집을 방문할 일도 교회를 갈일도 또 여행을 갈 일도 없는 요즘은 남편은 정말 그냥 막 입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가을, 겨울 내내 히트텍이나 32 degree에서 나온 내복 같은 옷을 잠옷으로 실내복으로 주구장창 입고 다녔습니다. 그의 말로는 촉감도 좋고 적당히 따뜻하고 가벼워서 너무 좋다면서요. 그리고 일하러 가거나 시장 보러 갈 땐 그 위에 후드티나 면티를 걸치고 나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가끔 집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는 늘 똑같은 옷을 입고 입습니다. 마치 남들이 보면 단벌신사인 줄 알겠지요. ^^

 

몇 개월 동안 그 옷만 입으니, 4-5벌 있던 옷들이 다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며칠 전 그의 빨래를 개다가 우중충한 그의 옷을 보면서..

"이제 이것 좀 버리자. 다 보풀나고 구멍 나고... 하도 빨아서 이제 옷이 막 시스루가 되어가~ 자기야~"

남편은 "그걸 왜 버려 ~ 어차피 집에서만 입고 나갈 땐 위에 뭐 입을 껀데 절대 버리지 마! 그 옷이 제일 편하단 말이야~ 걔네들은 마치 내 피부 같은 아이들이야! "

"아~ 나는 이제 보는 것도  너무 지겨워, 이게 뭐야? 맨날 똑같은 우중충한 회색 아니면 남색.."

 

그리고 오늘 아침, 저를 슬쩍슬쩍 눈치 보며 또 똑같은 옷으로 갈아있는 남편이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 거의 그 옷은 걸레야 걸레! 알지? 나는 그건 걸레로도 안 쓸 거야! 지겹지도 않아?"

"ㅎㅎ 자기야 ~ 내가 이 옷만큼 당신을 사랑해 ~"

"ㅍㅎㅎ뭔 소리야~ 나를 걸레를 만들겠다고?"

" 아니 나는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안 변한다고, 그러니까 나는 쭉 당신만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그래서 결론은 내가 걸레가 된다는 거잖아 ㅎㅎㅎ"

"아니지.. 내 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거지.."

"아무튼... 그건 아니야. 나는 걸레가 되고 싶지 않아 ㅎㅎ"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곤 남편은  그 내복 위에 후드티를 걸치고 출근을 했습니다. 저는 얼른 따뜻한 여름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아주 자연스럽고 은밀하게 그 아이들을 처형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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