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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소소한 일상/남편의 꿈) 말이 씨가 되는 날이 올까요?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2. 27.

 

 

 

 

 

 

 

 

 

 

 

 

한동안 잠잠하던 남편의 세계여행이 요즘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학교, 경제상황은 둘째 치고라도 낯선 음식도 문화도 분명 적응하지 못할 것이 뻔한 저였기 때문에 여전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독립하고 나면 남편과 캠핑카 타고 미주나 캐나다로 스케치 여행은 가고 싶다고 막연한 생각만 했습니다.  일단 캠핑카에서 하루 한 번이라도 한식을 해 먹을 수 있고, 언어도 영어권이니 크게 생소하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 덕분에 먹고 싶은 요리는 다 해 먹는 수준까지 되기도 했고 식구들과 24시간 함께 있는 것에 대한 적응력도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습니다. 작년 일년 동안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괴로웠다면, 이런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런 여러 가지가 이제는 괜찮겠다는 마음의 용기가 저에게도 생긴 듯합니다. 그리고 나를 너무 잘 아는 남편과 함께라면 크게 고생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함께 산책을 하다가 또 세계여행 이야기 다시 나와서 제가 그랬죠

"세계여행은 자신 없지만 RV 타고 미국이랑 캐나다 여행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스케치 여행은 늘 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 말에 남편은 정말 환한 얼굴로 " 정말? 진짜?"라고 했습니다. 

" 응,다른 나라는 안전도 걱정되고 언어도 안 통하고 음식이 안 맞는 게 가장 걱정인데  캠핑카 타고 다니면 내가 해 먹어도 되고, 또 미국이나 캐나다는 영어권인데다가 안전하고 익숙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 애들 하고 같이 있는 것도 코로나 덕분에 많이 익숙해졌고.. 아이들은 뭐 홈스쿨링하면 되니까.."

"진짜지? 약속했다. 지금 빨리 약속해!" 라며 손가락 깍지까지 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 자기야 ~ 아... 지금 막 심장이 뛰고 막 설레기 시작해. 나는 당신이 절대로 안 갈 것 같았거든"

천생 집순이인 마누라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던 여행을 하겠다는 말에 너무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 사실 나는 당신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살았어. 미술 공부도 해보고 상담공부도 실컷하고 그래서 나는 사실 한이 없어. 근데 당신은 가족먹여 살리느라 당신 하고 싶은거 다 참고 살았잖아. 그래서 당신이 진짜 해보고 싶은거 하나는 하게 해 주고 싶었어. 내가 책에서 봤는데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들 후회하는게 돈 많이 못벌고  떵떵거리고 못산거 보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거 못해보고 병원에서 늙어 죽는 게 그렇게 후회된데. 나는 당신한테 그런  후회 주고 싶지 않아.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누가 먼저 갈지 모르지만 혹시 당신이 먼저 떠나면 나는 평생 당신이 그렇게 소원하던 거 못해준 거 내가 두고두고 미안하고 한이 될 것 같아. 아직 세계여행까지는 못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리고 혹시 모르지? 미국 여행 다하고 나면 또 용기가 생겨서 세계여행을 하게 될지도..." 라며 말했죠.

 

" 진짜지? 와~ 그럼 캠핑카부터 사야겠다 ㅎㅎㅎ"

"뭐야~ㅋㅋ 그게 순서가 아니지.  이제부터 당신이 할거 진짜 진짜 많은 거 알지? 내 동의가 가장 큰 문제였지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다 당신 일이야. 당신이 다 정리하고 준비해야 해. 우리 집이며 짐이며 당신 사업 그리고 여행 준비까지 다 당신 몫이야!"

"아~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이 안갈려고 하는게 문제였지. 그런건 천천히 하면 돼.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면서 캠핑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로 해지는 줄 모르고 왔습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 여행을 준비하려면 그전에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1-2년은 족히 걸릴것 같습니다. 돈도 더 모아야하고, 저희 집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남편의 비지니스며 연로하신 시부모님 케어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하지요. 아마 이 여러가지 요소 중에 한 가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도 사실 여행은 물 건너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여행이 진짜로 실현될지 안될지는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 만으로 남편의 얼굴에 생기와 활력이 도는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곧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니 사실 좀 달리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많이 사고 쟁여놓고 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도, 금세 돈을 모아야 하니 자신이 원래 사려고 했던 전기차나 그런 것들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집에 짐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면서요. (저는 이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했습니다.) 아마 여행을 가야 한다면 정말 이제부턴 쓸데없는 것들은 사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스케치 여행이 잘되려면 그림 공부도 다시 하면서 일러스트와 동화작가에 대한 공부를 좀 더 심도 있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차피 여행을 하는 동안 상담일은 못하니 여행 동안  차 안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전에 저만의 그림 스타일이나 디지털 미술에 대한 공부를 해 놓으면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는 다음 스텝이 그려졌습니다.  그냥 남편이나 저나 이런 진취적인 생각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에 대한 꿈은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게 실현이 되든 안 되는 상관없이 말이죠. 

 

 

 

 

 

 

 

 

 

 

 

 

개인적으론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믿습니다. 저의 인생을 돌아보아도 당장에 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언젠가는  소망한 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삶으로 많이 느꼈습니다. 앞으로 1년이 될지 5년이 걸릴지 아님 10년이 걸리지는 모르겠지만, 남편과 어쨌든 한마음으로 통일된 것만으로도  첫 관문은 통과한 것이니까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남편의 꿈을 꼭 이루어 주고 싶네요.  어제 뿌린 우리 말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 참 궁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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