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항상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부지런한 엄마들에 비하면 정말 기본 중에 기본만 하거든요. 여러 번 글에서 썼듯이 저는 청소도 잘 안 하고 살림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뭘 할 때마다 " 자기야 ~000는 어딨어?" " 자기야 000은 어떻게 써?"라고 남편에게 물어봅니다. 예전에 저희 집에 놀러 오신 친정어머니께서 저에게 " 아이고.. 원 서방이 살림을 다하네~. 너는 집에서 뭐하는데?" 하고 물어보시 길래,
" 나?? 음.. 그의 정신적 지주?" 라고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직업이 학교 상담사이지만 정작 우리아이들과는 자주 놀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희 남편이 “너는 왜 남의 애들하고만 놀아주고 우리 집 애들하고는 안 놀아주냐?” 라고 늘 불만이거든요. 그러면 저는 “ 돈을 안 줘서 그렇다. ^^” 라고 받아칩니다. 이렇듯 집에선 상담일이 끝내고 나서, 밥하고 치우고 아이들 숙제 봐주고 나면 정말 손하나 까닥하기 싫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형제가 있으니 대부분 저희들끼리 잘 놀 때가 많고, 아빠가 재미있는 사람이라 같이 잘 놀아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청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필요할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밥 먹을 때가 될 때도 있고, 따로 시간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집중해서 들어줍니다. 남편은 재미있는 아빠이긴 하지만 사실 자기말 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남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 그도 제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비판 없이 제가 그냥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 많이 고마워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 이야기에 집중해 주는 것.
아이들도 무슨일이 생기면 저에게 달려와 말합니다. 어떤 경우는 토론/대화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그들의 하소연일 때도 있지만, 제가 정말 바쁘거나 피곤하지만 않으면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 “ 그럴 수도 있지~ 그랬구나~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니?” 등으로 반응해 주는 것이 다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재잘거리지요. 특히 큰 아이의 경우는 “ 엄마 오늘은 내 이야기 좀 들어줘야겠어!”라고 심각하게 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정말 각오하고 경청을 해줘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재잘거리는 성격도 아니고,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릴 땐 ‘ 뭐 잘했다고 울어? 울 것도 천지다! 뚝 안 해! “ 이런 소리만 어른들로 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소위 말 많고 수다스러운 것은 단점이었지 장점이 아니였거든요. 학교에서도 말 많은 아이들은 괜히 혼나기만 했죠. 조용하고 순종적인 성격이 칭찬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도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처음 큰애 키울때나 신혼초엔, 남편이나 아이의 감정이나 생각을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들은 말 그대로 아이와 남편에게 뱉어낸 적도 많고요.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말 답도 없는 쓸데없는 소리가 많고, 남편의 이야기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니 오히려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 도대체 이 이야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거야?" 라며요.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그런 "자잘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간낭비 같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쓸데없는' 시간이 나와 상대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이 깨닫는것 같아요. 대화의 목적은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공감받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이였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라고들 말하지요.
상담을 할때도 처음에 저를 무작정 거부하고 상담실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제가 그 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경청해 주기만 해도 정말 그들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 회복에서 경청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 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말은 잘 들어 주는 것이야 말로 상대는 제일 사랑해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힘들 때 나의 말을 정말 귀담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너무 고마웠듯이 말이죠. 그래서 다른건 몰라도 가족들이 저에게 아이들이 언제든지 다가와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말할 때 중간에 결론을 낸다던지 끊는다던지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경청만으로 서로를 더 신뢰하게 되고 또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풀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듯했습니다.
사실 별로 하는 것 없는 엄마이고 아내인데도 아이들과 남편은 제가 그들을 많이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중에 많은 부분이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 저에게 말하려고 다투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면 중간에 중재를 좀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 00아 기다려..언니가 말하고 있잖아, 언니 말하고 너 이야기하는 거야” 혹은 “ 어! 중간에 끼어들기 없기. 순서를 기다리세요” “ 어 다른 사람 이야기할 때는 끝까지 들어주는 거야”라고 교통정리를 해야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빠, 큰누나, 동생에 비해서 자기표현이 서툴고 버벅거리는 아들은 “ 괜찮아~ 엄마가 듣고 있어.. 천천히 말해” 라고 해줍니다. 아빠와 제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니 아이들끼리도 서로 들어주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여서 뿌듯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저희 집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게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다른 이가 말할 때 끼어들지 않는다.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며칠전 아침 먹던 중에 막내가 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끼어들어 제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던 찰나에 막내가
“ 아빠! 내가 먼저 엄마한테 말하고 있잖아. 중간에 끼어들면 안 되지~ 내 말 다 끝나고 해~”라고 하더라고요.
역시 아이들은 본대로 바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배우자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또 애정표현이 서툰 사람이라면, 비난, 판단 없이 그냥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 보세요. 분명히 상대방은 그 시간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경청은 어떤 면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사랑 표현이고 우리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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