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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미국생활

(추억여행/소소한일상)19년전의 나를 만나다

by art therapist (아트) 2020. 10. 10.

 

 

 

 

 

 

 

“ 2001년 9월 5일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이것저것 정리했다. Car registration 도 하고 전화요금도 보내고, San Jose State apply form도 보고.. 내일 오빠랑 같이 학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오늘은 그리고 학교 가서 선생님이 내준 article 읽다가 수업 들어갔는데… 왠 놈의 아줌마들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남은 1시간 동안은 그것만 듣다가 왔다. 영어 못하는 게 서럽다. 영어만 잘해도 나도 할 말 많은데… 수요예배 때 또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했다…..”

 

“2001년 9월 12일’

딱 일주일 만에 일기를 쓴다.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일기 쓰는 것을 미뤘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어제 아침 정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말 영화에서 보던 그런 일… 테러리스트들이 동시에 비행기 4대를 추락시켰다. 그것도 미국의 대도시 뉴욕 한복판에 미국의 명물이었던 쌍둥이 빌딩이 어처구니없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 때문에 미국이 난리가 났다. 학교와 공항이 문을 닫고 TV 엔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교회에 가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없고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이렇게 담담한 것 같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죽었다. 그것도 공포와 두려움 속에…. 그리고 그들의 시신은 갈가리 찢겨 찾을 수도 없다. 그런 일이 내 가족과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우연히 제 서랍 한쪽 구석에 오래된 저의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19년이나 된...

미국으로 오고 나서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 결심하고 일기를 쓴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일기장은 쓰다가 말다가를 계속 반복하고 2/3 도 채우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큰애를 낳고 공부를 시작하고는 도무지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장 안 되는 그 일기장에서 19년 전의 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년 전에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미국에 와서 여러 가지로 고군분투하던 청년이었네요. 영어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도 기억이 나고. 또 지금 저희 남편을 “ 오빠”라고 불렀던 것도 지금은 왠지 닭살스럽더라고요.  그리고 미국의 가장 아픈 역사 중의 하나인 9.11 테러 당시에도 미국에 있었습니다. 물론 사건은 뉴욕이었고,  전 캘리포니아라 느껴지는 체감은 많이 달랐지만 왠지 역사의 한 순간에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아직도 그날 아침의 뉴스는 잊혀지지가 않긴 합니다. 전 새로 나온 영화를  보여주는 예고편인가 했었으니까요.

 

얼마 전 9월 11일에 아이들 학교에서 9.11을 기념해서 수업시간에 공부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 엄마는 9.11 알아? 봤어? 하고 물어보더군요. 그때 “ 아…. 우리 아이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6.25 전쟁을 우리가 느끼는 것과 어른들이 다른 것처럼요. 뭔가 역사 속의 살아있었던 한 사람이 되고 나니 정말 나이가 많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일기장을 통해서 19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것이 서툴렀던, 그러나 생각이 많았던 24살의 청년이 보여서 저 개인적으로 너무 귀엽더라고요. 그때는 참 제가 어른이고 알아서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길이 참 막막하고 두려웠는데 말이죠.  쓸데없이 진지했던 제 자신이 너무 우스웠습니다. 그리고 그 24살의 청년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생각한 것보다  미래는 훨씬 더 행복하고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해!” 라구요.

 

그리고  그 일기장을 뒤척이며, 기록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의미를 넘어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기록을 통해 잊혔던 기억도 되살아나고 그때의 감정도 불러일으키더라고요. 마치 잠시 시간여행을 하고 온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매일  이런 장황한 일기를 쓰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저는 다른 작은 노트나 제 페이스북에 나름 기록을 하고 흔적을 남깁니다. 좋은 책의 글귀, 짧은 일기 그리고 아이들과의 추억 등.. 그리고 저는 몇 년 전부터 각자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가족들 사진을 다 모아 가족앨범책을 매년 만들고 있습니다. 컴퓨터나 핸드폰에 저장된 것은 후에 잘 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게 연도별 앨범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저에게 큰 기록과 저의 흔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지금의 저보다 훨씬 나이 먹은 제가, 지금의 기록과 흔적을 추억하며 잠시 오늘처럼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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