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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소소한 일상

( 소소한 일상/ 반려견이야기) 토비야 안녕....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6. 12.



제가 기억하는 어린시절부터 저는 항상 강아지를 키워왔습니다. 진돗개부터 포메리안까지 여러마리가 거쳐갔네요. 그래서 미국와서도 개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한 14년전 큰애가 만 4이 되던 해에 푸들 믹스견이 우리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사실 공부하며 아이키우며 개까지 키우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였지만, 3개월된 너무 귀여운 하얀 푸들을 거부할 단호함이 그땐 없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계획도 없던 저희 부부는 큰애와 토비와 함께 나름 단촐하고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고작 만 4살 밖에 안된 큰 딸이 토비를 좋아한다는 한 행동들은 거의 대부분 토비를 괴롭히는 수준이여서, 토비는 집에선 제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죠. 말도 잘듣고, 대소변 훈련도 너무 잘하고, 털도 안 날려 너무 좋았던 우리들의 시간을 제가 둘째를 낳고 셋째를 임신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둘째때도 신생아데리고 개까지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둘째가 토비를 너무 좋아해서 안심이 되었지요. 그러나 한 삼년후 제가 셋째를 임신한 것을 알고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토비에게 너무 미안해 졌습니다. 나름 제게 너무 사랑을 많이 받던 녀석이 둘째에 이어 셋째까지 낳고 나면 그에게 줄 에너지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즈음에 개를 한번 키워보고 싶어하던 지인이 있어서 입양을 보냈습니다. 아들하나에 식구도 단촐해서 저희집보다 더 사랑 받을 것 같았지요. 대소변 훈련도 잘되어 있고 순한녀석이라 걱정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이라 일년에 한두번 장거리 여행을 갈때면 저희집에서 꼭 봐준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입양간 집에서 너무 대접받고 사랑받아 살도 찌고, 저희집에 왔다가도 새아빠(?) 차소리만 들어도 문밖으로 나가려는 토비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정말 입양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5년을 보냈습니다.

한 7-8살때 입양을 보냈으니 토비는 이미 노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입양을 보낸 가족도 여행을 다니지 못해 오늘 처음 한 2년만에 다시 보았습니다. 이번주에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년 사이에 너무 달라진 녀석의 모습에 눈물이 났습니다. 하긴 소형견 14살이면 완전 할아버지이지요. 2년 전만해도 젊은 토비모습은 사라져도 저를 보면 반갑다고 꼬리치고 우리집 소파도 올라가며 외갓집에 온 것처럼 놀던 아이가 2년만에 모습이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근육도 너무 빠져 말라있었고 겁에 질린 모습으로 저희집에 왔습니다. 마치 모든 기억을 잃은 아이처럼 말이죠. 예전엔 주인이 나갈때 자기도 같이 갈려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가 가만히 멍하니 주인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노화로 인한 치매도 같이 온듯 했습니다. 달리지도 못하고 계단도 올라가지 못하고 불러도 반응 없는 달라진 토비를 보고 우리집 세아이는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토비는 다시 아기가 된듯 했습니다. 제가 막 3개월때 데리고 왔을때 겁에 질려서 저희를 무서워하던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토비가 걷는 걸음걸음 위태로워 보여 눈을 뗄수가 없었고 혹시 스트레스 받을까봐 다가가 만져주고 안아주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 토비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미래 나의 남편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실수로 대문을 열어놓으면, 나잡아봐라는 식으로 잽싸게 멀리 도망가버리던 그 녀석이 계단하나도 오르지 못해 뒤로 나자빠지는 모습에 나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모든 건강, 에너지 힘은 언젠가 연기처럼 사라지겠구나 하며요. 그리고 너무 싫지만 나도 누군가의 손을 빌어서 먹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걷고 내가 목숨처럼 사랑한 아이들도 잊어버릴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저이지만, 이것도 어쩌면 우리가 받아들여야하는 인간의 운명이고 숙명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먼저 베풀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후에 나를 건사해 줄 사람들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더 많이 읽으며 치매예방을 해야 겠다는 다짐도 했네요.

살아있는 생명체가 자신의 에너지가 사그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추억이 있다면 더하겠지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건 없기 때문이죠. 내 기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나의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오늘 토비가 저에게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를 다 잊은 듯 했지만, 전 다시 토비와 친해지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때 처럼 말이죠. 토비야 안녕하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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