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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가 되는 예술/북리뷰

(추천도서/ 박완서 소설) 기나긴 하루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4. 26.

 

 

 

 

평소에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박완서님의 책은 소설이 아니라 늘 누군가의 엄마, 동생, 가족의 이야기인것 같아서 가끔 찾아보게 되는 것같습니다.  이번 책도 마치 박완서님의 자서전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주로 심리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니 딱딱한 설명이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 서술적 표현만 보다가, 정말 다채로운 형용사와 표현들에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아.. 이런분들이 소설을 쓰시는구나 하며요.

 

그림에도 나의 상상에 따라 바라볼수 있는 추상화가 있고 마치 그림속의 인물이나 사물이 살아서 나올것 같은 정밀화가 있습니다. 박완서님의 작품은 정밀화같은 소설이였습니다. 마치 어떤 시대, 장소에 저도 함께 있는 듯한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더더욱 인상적이였던 것은 사람의 이중성과 심리를 날카로운 메스칼로 째고 활짝 열어놓은 듯했습니다.  그분에 소설에 나오는 사람중엔 완벽히 선한 사람도 완벽히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선한듯 했으나 모든 사람에겐 음흉하고 치졸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고 경험한 인간이야말로 어떤 생명체보다 이중적이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데 도사인 동물입니다. 생명이 있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체 가운데 인간이 가장 속을 알수 없는 생명체 입니다. 자신의 속깊은 욕망과 욕심은 늘 저 내면의 깊은곳으로 들어가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 인간세상이 이렇게 시끄럽고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인간의 내면을 작가님은 마치 보란듯이 까발려버리십니다. 거기에서 오는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감추고 있는것 다 꺼내봐!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듣기만 하셨잖아요. 보살님도 한마디 하셔야죠. 전 아까부터 보살님 할 말이 제일 많은 분이라 여겼는데.... 해보세요. 듣고 싶어요. 사람들 마음속엔 참 겹이 많거든요. 나도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더라. 보살님도 한 겹쯤 벗어봐요. 어서요. 그래도 나체안 나올테니, 안심하고." -본문중에서

 

"보살님의 고백이 끝나자 다들 나를 쳐다봤다. 이번엔 네차례하는 채근 같기도 하고, 저 여자도 설마 입을 열겠지, 지켜보려는 짓궂은 호기심 같기도 했다. 인간이기에 인간이 아니었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은 정욕보다 물욕보다도 강하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그 욕망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도 잘 방어해왔다. 이러한 나를 야유하듯 이 소아마비가 말했다. " - 본문중에서

 

 다른이의 간섭은 싫으나 또 홀로 외로운 것은 싫고, 독립적으로 살고 싶으나 소속감은 느끼고 싶고, 남이 잘되는 것이 배아프지만 자신의 쪼잔함은 보이기 싫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인간의 숨기고 싶은 마음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욕심, 이기심, 불안, 공포등을 너무나 세밀히 표현을 해주셔서 통쾌하면서 한편으로 숙연했습니다. 나도 소설 속 이런 인간과 똑같은 존재일뿐이니까요. 나도 이런상황이라면 이런 마음을 품을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인간의 심리가 너무 구구절절히 나와 있어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 살 자신도 없었다. 극도의 무력감은 슬픔보다 더 나빴다. 아들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전혀 신경 안 쓰고 남편의 영정을 머리맡에 두고, 여보 나 좀 데려가줘요. 하는 소리만 주문처럼 외고 살았다. 그런지 석 달 만에 남편이 데려간 건 내가 아니라 아들이었다. 나는 겁 없이 그런 주문을 왼 내 입술을 짓찢어도 시원치가 않았고 내 소원에 그런 어깃장으로 답한 남편이 꼴도 보기 싫어 당장 영정사진을 치워버렸다. 이럴 리가 없다. 제발 꿈이어라. 방을 헤매며 온몸을 벽을 부딪치는 난동도 부려보았지만 악몽은 깨어나지지 않았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수치심이 었다. " - 본문 중에서

 

이런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한 분이라는 건, 그만큼 자신도 자신의 겹겹이 감추고 있던 허물을 늘 고뇌하고 갈등하며 한거풀씩 벗겨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셨다면 아마 이런 사람의 내면을 알길이 없으셨을 테니까요. 나의 이중성도 나의 이 소심한 갈등도 " 사람은 다 그런거다. 그러니 괜찮다" 라고 위로해 주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아직 미처 읽어보지 못한 작가님의 다른 소설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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