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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가 되는 예술/북리뷰

(북리뷰/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by art therapist (아트) 2021. 8. 11.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나서 며칠 동안 아픈 것도 아닌 안 아픈 것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의 통증은 항상 출산 때와 비교되다 보니 생각보다는 안 아픈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항바이러스 약도 빨리 먹어서 더더욱 " 어?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싶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 쳐지는 것이 또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들 무조건 쉬는 게 좋다고 하여 이틀 동안은 정말 애들 밥만 챙겨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뒹굴뒹굴 쉬면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또 한참 기사에 오르내리기도 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막상 돈주고 사보고 싶은  책은 아녔습니다. 기사를 많이 봐서 그런지 내용도 대충 알 것 같았고 작가의 시선과 제 생각엔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는 지인이 멀리 이사를 가면서 주고 가는 바람에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왜 이 책이 그렇게 호불호가 심하고 시끌시끌했는지는 알겠더라고요.

 

일단 지극히 그 당시 여성의 입장으로만 바라본 한국 남녀차별의  시선이 분명 남성들의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과거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아진 80년대생의 여성의 삶을 남녀차별과 육아 스트레스가 빙의가 걸릴 만큼 심각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저도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읽으면서 이 정도면 양호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찐한 매운맛의 남녀차별을 겪은 어린 시절에 비해 82년생 김지영은 순하디 순한 맛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한국사회의 직장불평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저로썬, 한국사회가 아직 이렇다면 억울하고 분할 것 같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녀 불평등을 무엇이든 자로 잰 듯이 동일하게 반으로 잘라 똑같이 나눠야 할 것 같은 작가의 뉘앙스도 사실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끌려가야 하듯이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부부라면 여자가 출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남자에겐 출산능력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출산을 하게 되면 아이의 생명을 책임질 생명줄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있는 것도 변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불평등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아무도 특권이라 여겨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출산, 육아, 살림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 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이 대사가 많은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자이고 엄마인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남편인 내가 선심 쓰듯이 도와주겠다는 말이 못내 서운하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따로 있는 것 마냥 평생을 자라온 남편의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내를 돕겠다는 말에 길길히 날뛰는 아내가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육아를 좀 하다 보면 직장에서 투잡을 뛰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할 만큼 육아와 살림을 힘든 일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여성들도 남편들의 고충을 더 많이 이해합니다. 왜 그렇게 피곤해하고 짜증이 많아지는지 말이죠.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오래도록  남성들이 육아를 경험해 보지도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아기 때문에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을 뿐입니다. 더나아가 여성들이 똑똑해지고 사회진출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육아과 살림 대신,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싶어진 것뿐입니다. 그 안에서 생기는 마찰이고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평등의 시작은 뭐든 칼같이 반으로 자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일을 소중히 여겨주고 고맙게 여기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지만 이 시대의 남성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 대신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갖은 수모와 수치를 감수하는 아빠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남성들이 밖에서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 적합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사실 뇌 성향으로 볼 때 남자들은 오히려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뇌구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는 정말 집안에서 살림하고 요리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남성들을 능력 없고 무책임하다며 비난합니다. 남편들과 아빠들이 매달 가져다주는 월급에 감사를 표현하는 가정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더 많이 벌어오지 못한다고 다른 아빠들에 비해 능력 없다고 몰아세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하는 일을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것에서 우리는 불평과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 뿌리 박힌 이 차별의 문화는 어쩌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트라우마는 무조건 성장과 발전이라는 목표만 보게끔 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키우고 살림을 사는 일은 밖에서 돈을 버는 일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직장을 다니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나 변호사만큼 길거리의 쓰레기는 치우는 청소부들이나 배달을 하시는 택배기사님들도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분들입니다.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차별이나 불평등을 벗어나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 작가의 시선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런 책들로 앞으로 젊은이들이 좀더 상대를 향한 민감한 배려와 이해를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추천도서/ 박완서 소설) 기나긴 하루

평소에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박완서님의 책은 소설이 아니라 늘 누군가의 엄마, 동생, 가족의 이야기인것 같아서 가끔 찾아보게 되는 것같습니다. 이번 책도 마치 박완서님의 자서전인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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